제모 방법 다섯 가지, 털의 어디를 없애느냐가 다릅니다
레이저는 모낭을 겨눕니다
털의 어디를 없애느냐가 결과를 가릅니다
면도는 피부 밖으로 나온 부분만 잘라 냅니다. 털을 만드는 모낭은 아래에 그대로 남아 있어서 하루 이틀이면 다시 표면으로 올라와요. 자라 나온 털이 까끌하게 느껴지는 건 굵어져서가 아니라, 끝이 가늘게 뾰족한 자연 상태와 달리 잘린 단면이 뭉툭하기 때문입니다. 면도가 털을 굵고 검게 만든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여러 차례 확인해도 근거가 나오지 않았고, 새로 난 털이 아직 햇빛에 바래지 않아 진해 보이는 착시까지 겹쳐 그런 인상만 남았습니다.
왁싱은 왁스가 붙잡은 털을 모근째 뽑아내니 새 털이 밑에서부터 다시 올라와야 하고, 그래서 매끈함이 몇 주 이어집니다. 제모크림은 결이 아주 달라요. 티오글리콜산염이 털의 케라틴을 단단히 묶어 둔 이황화결합을 끊어 털을 물러지게 만들고, 그것을 닦아 내는 방식입니다. 잘라 내는 게 아니라 풀어서 지우는 셈이라 단면이 둥글어 면도보다 덜 까끌한데, 없애는 자리는 결국 피부 표면이라 다시 자라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면도와 왁싱 사이 어딘가에 놓입니다. 제모크림이 만들어 준 매끈함이 대개 며칠에 머무는 까닭이에요.
편한 만큼 조심할 곳도 여기입니다. 이 성분이 일하려면 pH 12 안팎의 강한 알칼리 환경이 필요한데, 피부 각질도 같은 케라틴이라 오래 얹어 두면 함께 무너져요. 미국 FDA는 제모제와 관련해 화상, 물집, 따가움, 발진, 피부 벗겨짐 신고를 받아 왔다고 밝히면서 제품에 적힌 시간과 사용법을 그대로 지키라고 안내합니다. 처음 쓰는 제품이라면 팔 안쪽 같은 좁은 자리에 먼저 발라 보는 첩포검사를 거치고, 상처나 염증이 있는 자리에는 얹지 않는 편이 안전해요. 얼굴이나 예민한 부위라면 그 자리에 쓰라고 만들어진 제품인지 표시부터 확인하고 꺼내는 게 낫습니다.
레이저와 가정용 기기는 무엇이 다를까
레이저는 털 자체가 아니라 색을 노립니다. 멜라닌이 잘 흡수하는 파장을 골라 쏘면 그 열이 모낭 쪽에 몰려 털을 만드는 구조가 무너지는데,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도 융기 부위와 털유두의 멜라닌에 에너지를 모아 파괴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합니다. 표적이 색이다 보니 옅은 털이나 흰 털에는 반응이 약하고, 피부색이 짙을수록 빛이 피부에도 흡수돼 화상 위험을 함께 따져야 해요. 그런 까닭에 피부색이 짙을 때는 더 긴 파장을 쓰는 장비 쪽으로 안내되고, 햇볕에 탄 직후라면 시술을 미루라는 설명이 함께 붙습니다.
한 번에 끝나지 않는 이유도 여기서 나옵니다. 털은 자라는 시기와 멈추는 시기, 쉬는 시기를 부위마다 다른 박자로 도는데 레이저가 확실히 무너뜨리는 건 자라는 중인 털이에요. 그날 마침 성장기에 있던 몫만 정리되고 나머지는 차례가 오길 기다려야 해서, 같은 자료도 한 달 반에서 두 달 간격으로 다섯 번가량 반복하도록 적어 두었습니다. 미국 FDA가 이런 장비를 허가할 때 쓰는 표현 또한 영구 제모가 아니라 영구적인 털 감소입니다. 미국에서 영구 제모로 인정되는 방식은 털 하나하나에 가는 바늘을 넣어 모낭을 없애는 전기분해뿐인데, 색을 표적으로 삼지 않아 옅은 털에도 쓰이는 대신 한 올씩 다루느라 넓은 부위에는 시간이 많이 듭니다.
가정용 기기는 한 가지 파장을 쓰는 병원 레이저와 달리 넓은 대역의 빛을 한꺼번에 터뜨리고, 집에서 쓰는 물건이라 출력도 낮게 묶여 있습니다. 안전을 위한 설계지만 그만큼 한 번에 정리되는 몫이 적어 회차가 길어지고 변화도 완만해요. 색이 옅은 털에 약하다는 한계는 병원 장비와 똑같이 따라옵니다. 뽑거나 미는 방식 뒤에 흔히 따라오는 모낭염과 인그로운 헤어는 방법을 고르는 일과 결이 다른 이야기라 여기서는 접어 둘게요. 이미 정리된 상태를 붙잡아 두는 도구로 보고 쓰면 기대와 결과가 덜 어긋납니다.